어도비(Adobe)가 발표한 ‘2020년 디지털 트렌드(Digital Trends 2020)’에 의하면 지난해 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이하 ‘CX’)을 주도한 기업 5곳 중 2곳(40%)이 목표치를 초과하는 성과를 보였다. 반면에 CX에 투자하지 않았던 기업 중 사업 목표를 달성한 곳은 13%에 그쳤다. 또한, 아태 지역 기업 5곳 중 1곳(19%)은 올해 가장 주목하는 사업으로 CX 향상을 선택했고, 절반 이상(57%)은 CX 지원에 대한 기술 투자를 높이겠다고 답변했다. 굳이 이런 수치적인 내용을 소개하지 않더라도 "고객 경험이 중요하고 투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용자들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경험하는 인지 반응을 통칭하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 이하 ‘UX’)'에 비해서 CX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CX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인지하는 순간부터 구입, 사용, 수리, 폐기, 재구매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고객이 느끼는 경험과 정서를 말한다. 전통기업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이하 ‘DT’) 사업에서 주로 사용이 되었지만, 온·오프라인 채널 간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O2O 서비스등이 발전하면서 최근에는 디지털 기업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문제는 'CX가 중요하다'는 것은 모두 알지만, 어떻게 개선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기업들이 많다는 점이다. UX와의 차이점도 모르기 때문에 UX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업무를 담당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FGI, UT(User Test), 사용자 여정 지도(User Journey Map), 페르소나(Persona), 프로토타입(Prototype) 등과 같이 다분히 UX의 기법에 머무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UX 개선이 CX와 무관하지는 않지만 꾸미기 위주의 개선 업무로 치부해버리는 웃지 못한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향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포레스터 컨설팅(Forrester Consulting)은 “장식은 그만하고 쇄신을 하는 CX를 해야 한다(Stop decorating, Start renovating CX)”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의견에 매우 동의한다. UX와 CX가 겹치는 영역이 있고 장식(decorating)도 필요하지만, 전통 기업의 현재 상황에서는 쇄신(renovating)이 더 우선한다는 의미로 받아드리면 되겠다. 조금 더 현실적인 표현으로 풀어보자면 CX는 디자이너와 서비스 기획 중심의 업무가 아닌 마케터와 비즈니스 기획, CRM전문가, IT 아키텍처 등의 업무로 해석하고 개선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자면 고객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서 복잡한 설명이 필요한데, 이번 칼럼에서는 CX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쇄신을 해야할 부분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고객을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재정비를 해야 한다. 디지털 기업들은 지나치리만큼 사용자(User)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온라인 행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시스템과 연계, 리서치, FGI, UT 등이 빈번하게 행해지며 결과물이 잘 정리되어 서비스에 반영이 된다. 반면에 전통기업들은 무심하리만큼 ‘고객’에 대해 무지하고, 그 심각함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남들 하는 것처럼 빅데이터 플랫폼을 만들고 온라인 행태 정보를 트래킹하는 시스템을 몇 십억을 투자해 구축하지만, 이를 살펴보거나 서비스 개선에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용자’로 시작하는 디지털 기업들의 보고서와 달리, 전통 기업들의 보고서에는 ‘고객’에 대한 언급은 없고 공급자의 입장만 나열되어 있다.
DT 사업의 핵심 목표는 CX의 개선이고, CX의 중심에는 고객이 있어야 한다. 고객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객 중심의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DT 사업이 실패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기존 CRM 시스템과 빅데이터 플랫폼의 관계 설정, 온라인 고객 행태 정보 수집과 이를 활용하는 프로세스, 외부 데이터와의 연계를 통한 개인화와 고객 여정 지도(Customer Journey Map)등이 재정비되고 실제 프로젝트에 적용이 되어야 한다.
둘째, 전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재정비해야 한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영국 은행앱들의 전체적인 프로세스를 비교해주고 있는데 전통기업과 디지털기업의 CX를 비교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참고 자료이다. 예를 들어, 계좌 개설을 하는데 전통기업인 ‘퍼스트 다이렉트(First Direct)’는 총 120번, HSBC는 99번을 클릭해야 한다. 반면에 인터넷 전문 은행인 레볼루트(Revolut)는 24번으로 가능했다. 더구나 기존 은행들은 반드시 웹사이트에 한번 이상 가야 했지만, 인터넷 전문 은행들은 모바일앱만으로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UX의 관점에서 이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퍼스트 다이렉트나 HSBC의 모바일앱이 불편한 것은 기존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유지하고 이를 디지털로 옮겨놓았을 뿐(Digitalization)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전통기업이 이렇게 디지털을 단순한 채널로 보고 있다. 디지털은 이제는 새로운 비즈니스이며 피할 수 없는 변화이다. 비즈니스 기획, 마케터, DT 담당 부서 등에서 전체 업무 프로세스를 고객 중심으로 구성하고 디지털 친화적으로 재정비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존(Legacy) 시스템의 전체적인 상황을 재점검하고 구축해야 한다. 전통기업들의 모바일 서비스를 보면 대체로 느리고 불안정하다. 앱스토어의 댓글을 보면 대부분 기본적인 속도와 안정성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기존 시스템이 노후화됐고 오래된 아키텍처와 기술 스택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권의 일부 서비스에는 아직도 COBOL로 작성된 모듈이 있는데, 아무도 그 모듈을 고칠 수가 없어서 계속 유지한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리곤 한다.
모바일앱에 대한 개발 완성도를 아무리 높이더라도, 핵심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기존 시스템이 느리고 불안정하다면 개선이 불가능해진다. 핵심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옮기고 전체적인 아키텍처를 유연하게 구성할 필요가 있다. 국내 대형 기업이 좋아하는 ‘차세대 프로젝트'를 활용하거나 U2L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조금씩 이동하고 개선을 해야 한다. 다만, 앞에서 이야기했던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기존 시스템 개선에 대한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기업들이 종종 있다. 그렇다면, 아예 상품이나 고객을 디지털 전용으로 이원화하는 CIC(Company In Company), BIB(Bank In Bank) 등과 같은 전략적인 판단이 요구될 수 있다.
전통 기업에서 DT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면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쇄신'보다는 눈에 보이는 조그마한 개선(Quick fixes)에만 몰입되어 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UX 변경과 소소한 기능 추가만으로 끝나는 프로젝트들이다. 전통기업들이 이러한 프로젝트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하는데 비해 체감되는 개선의 결과물은 그렇게 크지 않다. 그러한 이유가 바로 CX 개선의 핵심 문제점을 모르거나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회피만 하다가는 빅테크 기업과 스타트업들의 공세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 다가온다. 이제는 정면 돌파를 하거나 내부에서 파괴적인 혁신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과 실행 방안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객’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