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5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컨벤션 센터에서 구글 I/O 2014가 시작되었다. 구글은 키노트를 통해 파격적인 제품들을 소개하며 전세계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I/O에서 발표된 제품들은 ICT 산업에서 갖는 중요도와 무관하게 대부분은 예상이 가능했거나 루머를 통해 이미 알려진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조금 의외인 발표 내용이 몇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안드로이드 원’이다.
'안드로이드 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안드로이드 실버(Android Silver)’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2014년 4월 29일 더인포메이션은 구글이 넥서스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안드로이드 실버’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관련한 언론 보도와 루머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안드로이드 실버는 구글이 운영하는 인증 프로그램이다. 구글의 제공하는 가이드와 요구 조건에 맞추어 스마트폰을 개발하면 모든 제조사들이 받을 수 있다.
해당 인증을 받은 단말에서는 안드로이드 업데이트가 가장 빠르게 적용되며 안드로이드 순정(Stock) 상태의 사용자 경험을 할 수 있다. 또한, 제조사나 통신사들의 서비스앱이 선탑재하는 것을 제한하거나 제한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넥서스 시리즈를 통해 레퍼런스 단말을 직접 제공하던 전략에서 인증 프로그램으로 선회한 것이다. 안드로이드 실버는 하이엔드 단말을 지향하며 미국과 독일, 일본을 1차 대상 국가로 구상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져 있지만 업계에서는 이번 구글 I/O에서 발표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내년에 정식으로 운영될 예정으로 아직 일정상의 여유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글은 ‘안드로이드 원’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카드를 들고 나왔다. 순다 피차이 부사장이 발표한 안드로이드 원은 구글이 제조사들의 개발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게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표준 규격을 제공하는 인증 프로그램이다.
순정 안드로이드가 탑재되며 구글 플레이스토어 및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지원한다. 구글과 협의를 통해 진행되던 넥서스 시리즈와 달리 원하는 제조사는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상세한 내용을 살펴보면 볼수록 이미 알려진 안드로이드 실버와 동일한 모습이다. 다른게 하나 있다면 타깃 시장이다. 선진 시장의 하이엔드 단말을 타깃으로 하던 안드로이드 실버와는 정반대로 신흥시장을 겨냥하는 100달러 이하의 초저가 모델이다. 인도, 아프리카 등과 같은 제 3시장을 목표로 했다.
구글이 이렇게 인증 프로그램을 도입한 이유는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향한 통제권을 강화하고자 함이다. 이번 행사에서 구글은 안드로이드 차세대 버전인 ‘안드로이드 L’, 웨어러블 기기 전용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웨어', TV 전용 플랫폼 '안드로이드 TV', 자동차 전용 플랫폼인 '안드로이드 오토’ 등을 새롭게 소개하였다. 모바일 기기에 머물러 있던 안드로이드를 모든 스크린으로 확대해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제공되는 대상 스크린이 넓어지는만큼 구글에게는 깊어지는 고민이 있다.
안드로이드의 단편화와 리더십이다. 다양한 성격의 스크린에서 안드로이드가 사용되어지면서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인 단편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런만큼 구글의 통제력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마저 여의치가 않다. 가장 많은 안드로이드 단말을 판매하는 삼성은 적인지 동료인지 알 수가 없고 AOSP 기반으로 개발되어진 대체 플랫폼들은 안드로이드 생태계를 야금야금 장악하고 있다. ABI 리서치에 의하면 2013년 4분기 AOSP의 판매량은 7천100만대로 전체 안드로이드의 32.1%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앞으로는 웨어러블과 스마트 TV, 스마트 자동차 등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 구글은 넥서스 시리즈를 내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넥서스는 '구글이 제작에 참여한 순정 단말’ 이라는 것 이외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넥서스가 제시한 UX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단말은 소수 개발자들에게만 판매될 뿐이었다. 구글은 일부 제조사와 제류를 통해 진행하던 레퍼런스 단말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느슨한 방법으로 단말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했다. 안드로이드 실버와 안드로이드 원은 다양한 기기에서 통일된 UX를 제공하고 생태계 안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안드로이드 원이 안드로이드 실버와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는 시리즈인지 대체 제품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다분히 현실을 반영한 구글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선진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프리미엄 단말은 이미 삼성이나 LG와 같은 메이저 제조사들이 장악하고 있다. 인증 프로그램만으로는 파괴력을 가지기 힘들며 실효도 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흥시장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구글이 인증했다는 점만으로 브랜드 효과를 가질 수 있다. 더구나 100달러 이하라는 가격 경쟁력을 겸하고 있으니 시장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마이너 제조사들로서는 생산 비용은 낮아지고 구글이 마케팅을 지원할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1석 2조가 된다.
구글은 이번 행사에서 안드로이드를 통해 모든 장소와 스크린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계획대로 시장과 소비자들이 움직일런지는 아직은 알 수 없으며 결론을 내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 안드로이드 원은 커다란 구글의 비전을 채워주는 매우 현실적이고 단기 전략이다. 어쩌면 안드로이드 원의 성공 여부가 구글이 제시한 미래 전략의 결과를 가늠할 수 있는 첫번째 관전 포인트일 수도 있겠다.
* 이 글은 제가 ZDNET Kore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개인적인 기록을 위해 이곳에 남깁니다. 원본 글은 여기에 있습니다.